
넷플릭스 한국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은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언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와 사랑을 경계하는 흥수(노상현)의 관계를 중심으로,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그려낸다.
1. 도시 속에서 살아남기: 익명성과 관계의 역설
도시는 익명의 공간이다. 사랑과 이별, 우정과 상처, 그리고 삶과 성장은 도시 속에서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도시의 익명성이 곧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흥수는 대도시의 익명성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간다. 그는 방어적인 태도로 타인과 거리를 두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재희는 사랑에 솔직하고 직진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거침없이 상대를 향해 다가가며, 흥수가 감추려 했던 감정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두 인물의 상반된 사랑법은 영화의 핵심 주제를 관통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히 ‘정반대 성향을 가진 두 인물의 케미’를 보여주는 로맨틱 코미디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영화가 두 사람이 처한 사회적 맥락을 섬세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흥수가 타인을 밀어내는 이유는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가족의 억압에서 기인한다. 그가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했던 과거의 경험 때문이다.
2. 김고은과 노상현, 대비되는 연기의 균형
김고은은 재희라는 인물을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표현한다. 그녀는 현실을 거침없이 살아가면서도, 그 속에서 오는 외로움을 숨기지 않는다. 당당하지만 속내는 연약한 인물의 양면성을 능청스럽고도 자연스럽게 연기해 낸다.
반면, 노상현의 연기는 절제된 감정선이 돋보인다. 그가 연기하는 흥수는 말을 아끼고 감정을 숨기지만, 그의 작은 눈빛과 표정 변화에서 미묘한 갈등이 읽힌다. 특히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가 변화하는 과정은 노상현의 연기 내공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역할을 통해 그는 신인 배우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결국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수상으로도 이어졌다.
3. 성장과 사랑, 그리고 퀴어 서사의 확장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멜로지만, 기존의 비극적 퀴어 서사와는 결을 달리한다. 흔히 영화 속 퀴어 인물들은 사회적 편견과 갈등 속에서 희생당하거나, 금지된 사랑에 대한 처절한 고통을 겪는 서사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연애와 성장’이라는 보편적인 테마를 중심으로 한다.
흥수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방어적으로 살아왔지만, 결국 재희를 통해 변화한다. 그의 변화는 단순한 ‘사랑의 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결국,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특정한 성 정체성이나 성향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다.
이러한 점에서 대도시의 사랑법은 단순한 퀴어 영화가 아닌, 성장 서사로서의 보편성을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4. 원작과의 차이, 그리고 영화의 독자적 해석
영화는 원작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의 ‘재희’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각색되었다. 흥수와 재희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흥수의 가족 서사와 성장 과정이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이는 원작과 차별화되는 부분으로, 익명성 속에서 여러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는 소설 속 ‘나’(고영)와 달리, 영화의 흥수는 보다 특정된 인물로서 성장의 여정을 밟는다.
이는 감독의 연출 방향에서도 드러난다. 원작 속 주인공 ‘영’이 도시에서 방황하며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고 헤어진다면, 영화 속 흥수는 재희라는 강렬한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따라서 영화는 원작보다 한층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5. 퀴어 서사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개봉 전부터 퀴어 콘텐츠를 둘러싼 논란에 휘말렸다. 일부 보수 단체의 항의로 인해 예고편이 비공개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발은 결국, 한국 사회에서 퀴어 서사가 가진 위상과 대중적 반응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퀴어물과 BL(Boy’s Love) 장르가 다르게 소비되는 현상 역시 흥미롭다. BL 장르는 판타지적 요소가 강해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하지만, 대도시의 사랑법처럼 현실적인 퀴어 서사는 여전히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논란조차도 결국, 한국에서 퀴어 서사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결론: 대도시의 사랑,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서사를 다루지만, 결국 사랑과 성장에 관한 보편적인 감정을 담아낸다. 흥수와 재희의 대비되는 사랑법, 그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도시는 익명성을 제공하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결국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누군가의 솔직함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열게 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퀴어 로맨스를 넘어, 대도시를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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